나의 이야기

'마리아 칼라스의 마스터 클래스' 이해를 돕기 위한 음악 이야기

구자범 2016. 3. 9. 11:18

[연극 '마리아 칼라스의 마스터 클래스'의 팜플렛 글]


마스터 클래스 이해를 돕기 위한 음악 이야기 

– ‘아리아’에 관하여 



마스터 클래스에는 총 세 편의 아리아가 나옵니다. 벨리니와 베르디의 소프라노 아리아, 그리고 푸치니의 테너 아리아. 

마리아 칼라스는 이 아리아들을 처음부터 끝까지 ‘제대로’ 부르라고 끊임없이 요구하며 참가자들을 당황케 합니다. 

도대체 칼라스가 생각하는 아리아는 어떤 것이길래 그러는 걸까요?


모차르트의 오페라같은 고전극에선, 피아노의 전신인 쳄발로 한 대가 화음 하나를 달랑치면 가수가 대사를 읇조리듯 별로 노래같지도 않은 노래를 하다가, 오케스트라의 반주가 나오면 노래다운 노래를 하는 걸 볼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별로 노래다워 보이지 않는 그 부분을 ‘레치타티보’라 하고, 노래다워 보이는 부분을 ‘아리아’라고 합니다.

 

레치타티보(recitativo)는, ‘공연’이란 뜻의 영어단어 ‘리사이틀’ (recital)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공연하는(듯)’이란 이태리어입니다. 

즉 레치타티보를 부르는 동안에는 극이 진행됩니다. 

사건이 벌어지며 시간이 흐르는 것이죠. 

한편, 아리아(aria)는 영어의 에어(air), 공기라는 뜻입니다. 

공기는 비어있는 것이자 우리가 숨 쉬는 것이죠. 

즉 물리적 시간이 멈춘, 텅 빈 상태에서 감정을 표현할 뿐입니다. 

그래서 아리아를 부르는 동안은 그 음악적 시간이 아무리 길더라도 극 중 물리적 시간은 흐르지 않습니다.


그런데 사실 레치타티보는 그 언어를 모르거나 잘 못하는 가수를 위해서 쓰여진 것입니다. 

모국어가 아닌 언어의 대사를 소화하는 것이 어려운 가수에게, 그저 레치타티보 악보를 음정과 리듬대로 읽으면 저절로 강세와 장단이 살아나 정확한 억양이 되도록 만들어 준 것이죠. 

독어를 썼던 모차르트가 이태리어 오페라에는 레치타티보를 붙이고 독어 오페라에는 그냥 대사로 놔둔 것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비제의 카르멘도 원래 불어 대사로만 만들었는데, 불어로 연기하는 것이 힘든 다른 나라 가수들을 위해 나중에 레치타티보를 붙여준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벨리니나 베르디의 레치타티보도 이렇게 아리아와는 음악적으로 별개인 것으로 여기기 쉽습니다. 

하지만 벨리니나 베르디의 ‘아리아에 붙은’ 레치타티보는 다른 의미를 갖습니다. 

그저 극을 진행하는 대사에 음정과 리듬만 붙인 것이 아닙니다. 

시어로 심정을 표현하는 아리아의 일부로, 심지어 시간이 멈추기도 합니다. 

단지 고전 레치타티보의 형식을 빌려 품위를 더한 것일 뿐이죠.


오페라는 ‘시’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즉 레치타티보를 포함한 모든 가사는 각운(rhyme)을 갖는 함축적 시어입니다. 

이 시에 음악으로 새로운 시간(tempo=time)을 창조해 내는 극(drama) 예술이 오페라입니다. 

극이 극다우려면 극적(dramtic)이어야 하지요. 

그래서 오페라 작곡가들은 그 음악적 시간(tempo)를 어떻게 극적으로 구성하느냐에 온갖 힘을 기울였습니다. 


그 결과, 벨리니와 베르디의 아리아 장면은 대부분 이렇게 구성됩니다. 

-분위기와 배경을 설정하는 ‘오케스트라 도입부’ 

– 사건을 설정하는 독백의 ‘레치타티보’ 

– 느리고 서정적인 제 1아리아인 ‘카바티나/칸타빌레’ 

– 대화로 된 레치타티보인 ‘템포 디 메쪼’ 

– 빠르고 격정적인 제 2아리아인 ‘카발레타’


이로써 오페라 안에서 ‘아리아 장(scene)’이라고 하는 또 하나의 작은 극이 완성되었습니다. 

극을 극적으로 만드는 것은 갈등과 반전입니다. 

카덴짜로 조용히 끝난 제 1아리아에 이어 나오는 레치타티보인 ‘템포 디 메쪼(tempo di mezzo = half time)’에서는 반드시 제삼자가 등장해 반전이 일어납니다. 

하인이 들어와 새로운 소식을 알리거나, 우편 배달부가 깜짝 놀랄 전보를 들고 옵니다. 

혹 제삼자가 없으면, 라 트라비아타의 비올렛타 경우, 심지어 다중인격자처럼 자기 자신에게 미친듯 혼잣말을 하기도 하지요. 

어쨌든 이를 전환점으로 새로운 감정이 격정적으로 일어나 카발레타를 노래합니다. 

이 때 소프라노의 격정적 표현을 위해 흔히 음을 화려하게 분산나열하는 방식으로 색채(color)를 더하는데, 이것을 콜로라투라(coloratura)라고 부릅니다. 


이제, 벨리니의 몽유병의 여인 (La sonnambula)의 줄거리는 이러합니다. 

아미나라는 몽유병에 걸린 여자가 몽유상태에서 로돌포란 남자 집에 들어간 일이 있습니다. 

나쁜 소문이 나자 약혼자 엘비노는 파혼을 하고 다른 여자와 결혼하려 합니다. 

로돌포는 여자가 몽유병에 걸렸을 뿐 잘못이 없다는 것을 엘비노에게 보여주고 다시 결합시킵니다. 


소피가 부르는 아리아는 마지막 장면입니다. 

사람들이 지켜보는 고요한 가운데 꿈꾸는 상태에서 (오케스트라 도입부), 

아직도 자신은 아무런 잘못한 것이 없으며 아직도 그를 사랑한다는 것을 독백하고 (레치타티보), 

마치 금방 시든 꽃처럼 자신의 사랑이 덧없음을 노래합니다 (제 1아리아/칸타빌레). 

상황을 깨달은 엘비노가 다시 반지를 끼워주자 꿈에서 깨어나고 (하프타임-반전), 

재결합의 기쁨을 화려하게 노래합니다 (제 2아리아/카발레타).


또, 베르디의 맥베스 (Macbeth)는 셰익스피어 원작으로, 줄거리는 잘 알려진 바와 같습니다. 

샤론이 부르는 아리아는 레이디 맥베스의 첫 등장입니다. 

폭풍우가 몰아치는 가운데 (오케스트라 도입부),  

남편이 왕이 되리라는 예언이 적힌  편지를 보며 그는 악행을 저지를 만한 용기가 없다고 독백하고 (레치타티보),  

자신의 권력에 대한 야망을 불태웁니다 (제 1아리아/카바티나). 

그 때 하인이 들어와 오늘 밤 왕이 자기 집을 방문한다는 소식을 전하자 (하프타임-반전), 

왕을 암살하기로 결심합니다 (제 2아리아/카발레타).


자, 이 모든 것이 한 편의 ‘시’입니다. 

그리고 칼라스는 이 시 전체를 ‘아리아’라고 통찰합니다! 

이 아리아는 드라마틱하게 완결된 하나의 작은 극이고, 그리하여 놀랍게도 아리아에서조차 전체 극이 시간상 ‘진행’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칼라스는 맨 처음 오케스트라 도입부가 이미 아리아의 시작임을 강조하며, 그에 귀를 기울이는 것 자체가 곧 노래하는 것이라고 소피에게 가르칩니다. 

또한 카바티나만 부르고 반전 이후의 카발레타를 부르지 않는 것은 결코 완성된 아리아가 아님을 샤론에게 강조합니다.


그러나 테너 토니가 부르는 토스카 (Tosca) 중 첫 아리아는 전혀 다른 구조입니다. 

갈등이나 반전이 없습니다. 

오페라 첫 장면, 화가인 마리오 카바라돗시는 교회에서 막달라 마리아 초상화를 그리며 애인인 플로리아 토스카와 둘이 참 오묘하게 닮았다고 노래합니다. 

그 때 정치범인 친구가 탈옥하여 교회에 들어오자 숨겨주고, 곧이어 아무것도 모르는 토스카가 ‘마리오’를 부르며 찾아오면서 비로소 극의 갈등은 시작됩니다. 


푸치니의 오페라의 구조는 전통양식과 달라서 서곡조차 없습니다. 

극 맨 처음에 나오는, 아직 아무런 갈등이 없는 이 짧은 아리아 자체가 극의 배경 설정입니다. 

즉 이 아리아가 오페라의 서곡인 셈이죠. 

칼라스는 이 아리아가 바로 오페라 전체의 배경인 밑그림임을 정확히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고 토니에게 강조합니다.



::: 반전 

– 그러나! 이 극에서 음악이야기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사실 아리아가 무엇인지 몰라도 음악을 즐기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듯, 오페라라면 지긋지긋 싫어하는 사람조차도 이 연극을 즐길 수 있습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따로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처음엔 마리아 칼라스가 하는 말이  ‘내가 평소 남들에게 하던 말과 참 비슷하다’며 막연한 동지 의식에 기뻐했습니다. 

그런데 많은 리허설 시간을 통해 칼라스의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아, 사실은 이게 내가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이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오늘도 그녀가 내게 충고해 주는구나... 바로 이게 나에게 필요했던 말이구나!’


리허설 때마다, 나는 마치 힐링 캠프에 온 양 칼라스의 말에 귀기울이며 스스로 되돌아보았습니다. 

그리고 평온함으로 마음을 다졌습니다. 


칼라스의 말, 어쩌면 내가 알고 있던 말, 혹은 이미 내가 남에게 해왔던 말... 

그러나 그 말을 그녀의 입을 통해서 들으면, 놀랍게도 삶의 전환점이 될만큼 큰 의미로 다가옵니다. 

도대체 어떤 말이냐고요? 한번 맞혀 보세요. 

아니, 직접 여러분이 함께 느껴 보시면 어떨까요?

 

구자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