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구자범 2020. 8. 28. 01:23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아직도 간직하고 있는 나의 첫 파이프는,

삼십년 전 내가 철학과에 입학하자 누나가 미국에서 선물로 준 것이다.

어릴 적에 갔던 친척 할아버지 댁의 어둑어둑한 서재는 파이프담배와 낡은 책들의 향이 어울려 매우 고고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그 향이 좋아서 누나와 나는 몰래 그 방에 들어가곤 했다.

그곳의 은은한 향은 고결하고 온화한 노교수의 깊은 사색이 뿜어낸 것으로 느껴졌다.

담배를 싫어하는 누나가 파이프를 내게 선물한 건, 아마도 나와 같은 이 추억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는 그 향을 품은 삶을 동경하여,

어린나이에 파이프를 물었다.

 

고삼 때 식구들이 다 미국으로 갔다.

대학입시 때문에 혼자 한국에 남았던 나는 그 시기를 아주 자유롭게 보냈고,

그러다보니 이미 어른이 된 듯 했다.

그렇게 도취되어 살던 대학초년 때,

별명이 초록공주인 교회 고등부 일년 후배가 보낸 편지를 받았다. 

 

‘...떡볶이 포장마차를 하시는 홀어머니를 도우며 동시에 공부하기는 너무 힘들어.

원하는 학교에 간다해도 등록금 마련할 방법이 없으니,

전액장학금 받는 학교로 낮추어 갈거야.

소설처럼 어느 노신사가 나타나,

후원할테니 공부만 열심히 하라고 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말도 안되는 꿈을 꿔...’

 

공부해서 외교관이 되고 싶다는 소망을 깨알같은 글씨로 빽빽하게 써내려간 편지.

난 파이프를 뻑뻑대며 그 글을 읽었지만,

신문배달하는 재수생 친구와 함께 쪽방에서 간신히 자취생활하는 내가 그 노신사 역할을 할 방법은 하나도 없었다.

내 파이프는 그저,

치기어린 젊음이 겉멋부리는 소품일 뿐이었다.

나는 파이프를 내려놓았다.

결국 그녀는 전액장학금을 받는 학교로 들어갔고,

허망하게도 첫 신입생 수련회에서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지천명.

나는 다시 파이프를 피우기 시작했다.

열여덟 소녀 눈에는 노신사로 보일 나이가 되었다.

이젠 없어진 교회의, 오래전 연락 끊긴 옛 중고등부 선후배들에게 알음알음 전화를 했다.

깊이 묵혀둔 편지 속 노신사에 관한 내 마음의 빚을 이야기하니,

순식간에 스무 명 훌쩍 넘는 사람들이 노신사의 일부가 되겠다고 하여 초록공주 장학회가 만들어졌다.

남남이 되어 교회를 떠난 이들이,

나를 비롯한 대부분은 이제 기독교인도 아닌데,

삼십년 전을 기억하며 이른바 ‘비대면 온라인’으로 매달 꼬박꼬박 헌금을 한다.

참 멋진 사람들이다.

지난주, 드디어 한 여대생에게 첫 장학금을 전달했다. 

 

그런데 그날 저녁, 음악인들의 식사자리에서 한 중견 성악가의 재미있는 일화를 들었다.

향후 공연을 묻는 팬에게

“이번엔 오페라 ‘춘향’에서 월매 역을 해요.”라고 알려주자,

“어머, 선생님이 벌써 월매 역을 할 나이가 되신 거예요?”라고 하기에,

웃으며 답했단다.

“전 스무 살 때도 월매였어요.”

 

영화배우와 달리, 오페라가수는 나이에 따라 역할이 바뀌지 않는다.

자기의 타고난 성대에 따라 역할이 결정되기 때문에,

베이스 목소리로 태어난 사람은 스무 살에도 늙은 왕 역으로,

테너 목소리로 태어난 사람은 환갑에도 피끓는 청년 역으로 무대에 선다.

오페라 ‘나비부인’의 주인공은 극중 열다섯 살 일본소녀지만,

뚱뚱한 빨강머리 할머니가 노래해도 감동적이다.

이런 면에서 오페라 무대는,

나이 뿐 아니라 외모, 국적, 인종 등 아무런 차별 없이,

오로지 자신의 ‘본디 소리’만으로 각 역할을 나누어 맡은 이상적인 평등사회이다.

 

갑자기 ‘삼십년 전 나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는 생각이 맞는지 의심이 들었다.

문득, 내 본디 소리만 확실하다면 스무 살에 노신사 역을 못 할 이유가 없었다는 걸 깨닫는다.

부자가 되어야만 가능한 게 아니라 백수인 지금도 가능한 거라면,

그때도 가능했다.

어차피 지금도 혼자서는 못하는 거라면,

그때도 지금처럼 남들과 함께 하면 되는 거였다.

시간과 여건에 따라 파이프를 들었다 놨다하며,

본디 소리는 잊고 역을 달리한 내가 부끄러워졌다.

파이프에 피어오르는 연기를 물끄러미 지켜보며,

나는 또 반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