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분하다
세월호 사건이 일어났을 때,
할 일 없는 백수인 나는 열흘이 넘도록 24시간 내내 컴퓨터 앞에 앉아,
마치 방송국 피디처럼 모든 인터넷 방송과 언론사의 생중계 등을 멀티윈도우로 동시에 열어놓고 모니터했다.
곳곳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실시간으로 보았고,
그것을 나중에 언론에서는 어떻게 보도하는지 보며 치밀어 오는 분노를 눌렀다.
어떤 사람이 뻔뻔하게 거짓을 말하고, 나중에 어떻게 변명하는지 똑똑히 보았다.
또 인터넷 공간에서 어떻게 음모론과 유언비어가 생겨나고 확산되는지도 알게 되었다.
진실은 숨기고 책임은 피하는 이 사회의 우리 모습을, 그저 부끄러워하며 볼 수밖에 없었다.
고마운 사람들
작년 11월, 몇 언론사를 상대로 한 명예훼손 고소를 접수한 서울 중앙지검이 서울 중부 경찰서로 수사 지시를 내렸다.
그런데 경찰이 해당 언론사의 기자들을 수차례나 불러도, 기자들은 단 한 차례도 출두에 응하지 않았다.
그 중 한 해당 언론사의 담당 출입기자들이 있는 수원경찰서로의 이송만을 요구할 뿐이었다.
계속되는 출석요구 불응에 수사관이 법적구인을 검토하겠다고 할 무렵인 올해 2월,
검찰과 경찰에 대대적 인사이동이 있었고, 갑자기 이 건의 담당자도 다 바뀌어 버렸다.
그 후 새로운 담당자에게 기자들은 또 다시 이송을 요구하였고, 결국 새로운 담당자는 그를 받아들여 이 건을 수원으로 이송했다.
수원 경찰은 딱 한 번, 각 언론사의 기자들을 동시에 불러 모아 ‘수사’를 했고,
그 외에는 단 한명의 참고인이나 증인이나 제보자도 부르지 않았다.
해당 언론사에 데스크까지 찾아가 기사 정정을 요구한 참고인, 자신이 당시 그 자리에 있던 사람이니 다른 한 쪽 이야기만 듣지 말라며 인터뷰를 요청했으나 거부당한 증인, 익명을 요구하며 뒤에 숨어 제보했다는 사람 등 그 어느 누구도 조사하지 않고, 단지 언론사들의 기자들을 한 번 모은 자리가 끝이었다.
그 단 한차례의 ‘수사’ 후, 경찰은 언론사에게 면죄부를 주어야 한다며 ‘불기소처분 의견’을 검찰에 올렸다.
국민의 알 권리, 언론의 자유, 익명 제보자인 취재원 보호 등의 틀 안에서는 개인의 명예훼손 정도는 재판조차 받을 필요가 없다는 의견인 셈인 것이다.
나중에 이 소식을 접하고 분노한 변호사가 수원 지검을 찾아가 담당검사를 만나고 재수사를 촉구하며,
참고인과 증인을 소환해서 엄밀하고 공정하게 수사해 달라는 의견서를 제출했다.
하지만 검찰에서는 시간만 끌 뿐 다시 경찰에 재수사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
그러자 변호사로부터 이 답답한 소식을 들은 사람들 중 몇몇 뜻있는 사람들이,
SNS상에서 검찰에 엄밀하고 엄정한 수사를 촉구하는 ‘자필 탄원서’를 내자는 운동을 시작했다.
그 시작이 수요일이었는데, 놀랍게도 단 이틀 만에 특급우편으로 각계각층의 인사들이 쓴 50여 통의 자필 탄원서가 변호사 앞에 도착해서, 금요일 오후에 변호사가 탄원서 모음 1차분을 검찰에 제출했고 그 다음주에 2차분을 제출하기로 했다.
그러나 어이없게도 바로 다음 월요일 아침에,
변호사는 그간 그토록 미적대며 시간을 끌던 검찰로부터 갑자기 불기소 처분을 하겠다는 통고를 ‘전화’로 받는다.
이 후 변호사는 불기소처분 통보를 문서로 받자마자 곧 항고를 접수했다.
그리고 내게 이제는 항고이유서를 제출해야 한다고 알려주었다.
심지어, 내 사정을 알고 있으니 항고에 필요한 비용은 신경 쓰지 말라고 덧붙여 말하며.
나의 변호사는 억울한 사람을 위해서만 뜻있는 일에 헌신하는 인권변호사로,
내 소식을 듣고 돈과 상관없이 변호해 주겠다고 먼저 나선 분이다.
그는 변호사 수임료를 받지 않았다.
변호사 사무실이 사건접수를 할 때 서류상 반드시 필요한 법적비용만을 받았을 뿐이다.
그럼에도 사무실 책상 앞에 앉아 서류만 쓰고 보내는 게 아니라,
모든 조사 때마다 서울 중부경찰부터 수원 남부경찰, 그리고 검찰까지 사방팔방을 열심히 뛰어다니셨다.
그리고 그 때마다 만류하는 나를 제치고 오히려 나에게 밥을 사셨다.
얼마 전엔,
이런 사실을 들은 몇몇 뜻있는 분들이 ‘구자범의 항고 비용을 사람들이 십시일반으로 모아 변호사를 후원하겠다’고 알려왔다.
고마움의 눈물을 마구 쏟아내는 뜨거운 가슴을 간신히 진정시켜야 했다.
도대체 나란 놈이 뭐라고 이 많은 분들이 이렇게까지 하시나.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쉽게 결정하기 어려웠다.
...나는 꽤 깊이 고민했다.
그리고 항고를 거부하기로 마음을 정했다.
항고 이유서를 검찰에 제출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항고 거부 이유서를 내 스스로에게 제출하기로 했다.
항고를 거부한다
무엇보다도 나는 누구에게 고소를 당한 사람이 아니다.
누가 나를 법적으로 정죄한 것이 아니므로, 내가 나의 무죄를 스스로 법정투쟁을 통해 밝혀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 아니다.
만일 그런 상황이라면 대법원까지라도 올라가고, 심지어 길거리 1인 시위라도 해야 할 판이지만,
나를 법적으로 고소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게다가 이 건은 수십 년이 걸리는 한이 있더라도 반드시 진실을 법적으로 규명해야 할 무슨 역사적, 정치적 대의명분이 있는 중요 사안도 아니다.
단지 내가, 개인의 상처에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는 사회를 향해,
누군가는 최소한의 양심적인 책임을 질 것을 요청한 것이 이 명예훼손에 대한 고소행위였을 뿐이다.
그리고 이 고소행위는 내 양심을 놔두고 내 명예를 재판의 판결에 맡기겠다는 뜻이 아니었다.
내 양심은 온전히 나의 것이고, 나의 삶을 걸고 내 책임으로 내가 판단한다.
그리고 내 명예도 궁극적으로는 나의 양심에 따르는 것이다.
그런데 내 명예가 한 재판 결과에 따라 정해진다는 것도 불합리하다고 할 판에,
기소독점권을 남용하여 그나마 그 재판조차 하지 못하게 막아버린 검찰에게 또 다시 호소해서 제발 재판이라도 받게 기소해 달라며 내 명예회복을 맡긴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게다가 하필 그 검찰이 어떤 검찰인가.
그간 검찰이 누구를 기소하고 누구를 불기소했는지 최근 국정원에 관련된 사건들만 살펴봐도,
내가 왜 그들에게 그런 잣대를 주어야하는지 회의적일 수밖에 없다.
설사 그들이 양심적이었다고 하더라도, 나는 내 양심의 문제를 그런 종류의 양심에 호소해서 해결하고 싶지 않다.
수사하는 경찰도 마찬가지이다.
시간이 지난 지금도, 만일 세월호 사건에 관한 당시 언론보도의 문제를 해경에게 수사하라고 지시한다면 어떤 어처구니없는 결과가 나올지 눈을 감지 않아도 선명하게 떠오른다.
같은 구역에서 공생하는 언론을 경찰이 어찌 다루는지는 그동안 사회물정 모르고 순진했던 나도 이제 알게 되었다.
내가 무슨 피해보상을 청구해서 돈이라도 달라고 했던 것도 아니었다.
언론사가 기소되어 재판에서 지면 아마도 기껏해야 정정기사가 한 줄 나갈 터이다.
그런데 내가 부당하게 해임이나 파면 당한 게 아니고 스스로 사표를 던지고 나온 것인 만큼,
어차피 나는 현 음악계로는 돌아가고 싶은 생각도 없다.
그러니 무슨 복직을 준비하며 서류상 문제가 되는 게 있을까봐 그런 정정기사라도 한 줄 필요한 것도 아니다.
그리고 그 정정기사 한 줄 쓰는 책임조차 피하려는 사람에게 계속 책임을 묻는 것을 항고란 행위를 통해서 하는 것이라면,
나는 이제 책임지지 않겠다고 발뺌하는 이런 사람들을 쫓아다니며 붙들고 늘어지고 싶지 않다.
개인적인 차원에서만 보더라도, 어떤 종류의 투쟁이건 자기가 행복하지 않은데 할 수는 없다.
심지어 역사적으로 의미있는 반독재 투쟁을 하더라도, 적어도 그 투쟁하는 사람이 행복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책임을 회피하려는 사람에게 계속적으로 잘못의 책임을 법적으로 물음으로써 나의 명예를 회복하겠다는 투쟁방식이,
나에겐 결코 행복하지 않다.
어차피 처음부터 나를 믿던 사람들은 그 때나 지금이나 계속 나를 믿는다.
그 분들은, 한 때는 악의적 기사 때문에 잘 못 알았을 수 있던 사람일지라도 나에게 조금이라도 애정을 품었던 사람이라면 시간이 지난 지금은 진실을 알게 되었을 터이니, 이제는 충분하지 않느냐고 말한다.
심지어 그 동안 옆에서 지켜보며 기사를 쓴 언론인들조차,
최근 구자범의 진실을 다룬 기사들이 나간 후 단 한 사람도 항의 전화를 하거나 반대의견을 보내오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명예회복은 충분히 되었다고 봐야 되지 않겠냐고 한다.
충분하다
그렇다.
적어도 일년 전 일부 언론에서 써댄 대로 ‘구자범은 평소에 갑을관계를 이용해 단원들을 함부로 괴롭히는 것을 일삼으며 살았다’라는 것이 사실일 수 없다는 것을 알아주면 충분하다.
물론, 사실상 그것만으로 모든 것이 충분한 것은 아니다.
내막을 밝히겠다고 양심선언한 사람도 없고, 이렇게까지 될 줄은 몰랐는데 잘못했다고 사과한 사람도 없고, 따라서 용서해 달란 사람도 없다.
하지만 이제는 나 스스로가 과거에 연연하지 않고 빨리 벗어나 더 이상 미워하지 않고 사는 모습이,
내가 살고 싶은 삶에 더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가장 중요한 것이 이미 나에게 충분하기 때문이다.
일년 전 사람으로부터 받은 '상처'보다, 지난 일년 간 사람으로부터 받은 '감동'이 비교할 수 없이 훨씬 크다.
영화 ‘변호인’의 마지막 장면.
법정에서 변호사들이 계속 호명되어 일어날 때 뒤돌아 물끄러미 바라보는 주인공의 표정엔 모든 것이 담겨 있었다.
나는 이 영화를 세 번 보았는데, 그 때마다 이 마지막 장면에선 영화가 끝나도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할 정도로 엉엉 울었다.
하지만 내 개인에게는,
내가 한 번도 보지도 못했고 누군지 알지도 못하는 그 많은 분들이 아무것도 아닌 나 같은 놈을 위해 친필로 정성껏 탄원서를 작성하고 우체국에 가서 변호사 앞으로 부치고 있는 모습이,
영화 변호인의 마지막 장면보다 더 뭉클하고 감동적이다.
나는 엄청나게 많은 양의 친필 탄원서가 속속 들어온다는 소식을 듣고,
이메일에 익숙한 이 디지털 시대에 손에 잉크를 묻혀가며 종이에 한 자 한 자 적어가는 많은 분들의 모습이 떠올라 또 펑펑 울었다.
나는 일년 동안 억울하거나 괴로워서 울지 않았다.
그저 감동적이고 감사해서 울었을 뿐이다.
사실 그런 면에서 지난 일년은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일년이었다.
내가 평생 받을 수 없을 줄 알았던 최고의 사랑을 받았고, 그런 사랑을 주는 사람들의 모습에 감동을 받았고,
그래서 사람들에게 다시 희망을 보고, 또 그에 감사함으로 울었다.
실제로 많은 분들이 내가 이토록 사랑받는 걸 보며, ‘부럽다’라고 까지 했다.
정말 세상과 나를 다시 찬찬히 돌아볼 수 있는 참으로 좋은 안식년이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감사함으로 눈물이 쏟아진다.
나는 여태껏 나의 일을 마치 자신의 일처럼 안타까워하고 옆에서 힘이 되어주신 수많은 분들을 다시 떠올리고,
이 모든 것을 절대 잊지 않기로 약속하며 말씀드린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이 말이 내 ‘진심’을 표현하기엔 얼마나 부족한지 내가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나는 항고를 거부하겠다.
그러나 부끄러워서가 아니라 더 떳떳하고 싶기 때문임을 그 분들은 말 안 해도 잘 아실 것이다.
그러하기에 그저, 그토록 힘들게 도와 주셨는데 ‘죄송하지만’ 항고를 거부하겠다고 하지 않고,
그토록 힘들게 도와주셔서 ‘감사하지만’ 항고를 거부하겠다고 말하고 싶다.
바깥에 발을 내밀며
일 년 만에 밖으로 나가 부산 영화제 자막팀에서 새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리고 한국에 들어온 이후 처음으로 다시 블로그를 개설한다.
이제는 남이 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들으며 그에 연연해 하는 게 아니라, 나 스스로 소소하나마 내 이야기를 하고 싶다.
언젠가 내가 ‘이젠 정말 괜찮다’라고 느낄 만큼 평온해 지면,
그동안 억울하고 답답했던 시시콜콜한 이야기와 그에 따른 소회도 아주 담담하게 이 블로그에 써 보게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