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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나는 추모하지 않는다, 분노할 뿐이다.

by 구자범 2015. 4. 16.



나는 추모하지 않는다, 분노할 뿐이다.




오늘 아침, 

유일하게 십대인 제자가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들어온다.

예고를 자퇴한 그는 하필 바로 딱 그 나이.

굳은 표정으로

너는 뭐하니, 

라고 묻자 기특하게도 두어 시간 뒤에

파는 곳이 없어서 제가 직접 만들었어요,

라며 노란 리본을 단 사진을 인증샷이라고 보내온다.


스산한 바다를 창 너머 바라보고 있으니

평소 잘 안 마시는 소주가 이토록 간절할 수가.

굳이 소주를 들이키고 부산대 정문으로 간다.


물리학과 유인권 교수가 바이올린을 들고 연구실에서 내려온다.

그는 진정한 뻘쭘함이란 무엇인가 몸소 가르쳐 주려는 사람마냥

정문 앞에 서서 무심히 지나가는 학생들을 바라보며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그 날이 오면... 쉬지 않고 연주한다.


난 그저 노란 리본 그림을 높이 들고 그 바이올린 옆에 멀뚱히 서 있을 뿐이다.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는데 그는 연주를 멈추지 않는다.

그 어떤 연주 중이라도 빗방울 하나만 떨어지면 무조건 악기싸서 들어가는

근사한 전통을 가진 프로 연주자의 바이올린과는 사뭇 질이 다른 강철 악기인가 보다.


학생들은

웬 수염난 아저씨 둘이 구걸을 하고 있나, 

하는 표정으로 쉼없이 발빠르게 지나간다.

혹시나 누가 정말 동전이라도 던질까봐

나는 허리를 굽혀 앞에 놓인 그의 바이올린 케이스 뚜껑을 슬며시 닫는다. 


모든게 다 거꾸로다.

견딜 수 없이 부끄럽다.

그러나, 난 그저 노란 리본 그림을 높이 들고 그 바이올린 옆에 멀뚱히 서 있을 뿐이다.









까막 구자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