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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오페라 맥베드 : 마녀들의 나라

by 구자범 2016. 11. 22.


                                  

베르디 오페라 맥베스에 나오는 첫 대사는 이러하다.


“셋째 마녀 – 작은 언니는 뭘 했수?

 둘째 마녀 – 난 개돼지 놈 목을 땄지.

 셋째 마녀 – 큰 언니는?

 첫째 마녀 – 밥 좀 달라는 나한테 꺼져버리라고 한 그 년을 어떻게 처리할까 고민 중이야.                

              배를 바다에 침몰시켜서 그 남편을 죽여 버릴거야.

 셋째 마녀- 내가 북풍(rovaio)을 선물해서 배를 암초에 부딪치게 해 줄게.

 둘째 마녀 – 나는 거친 풍파를 일으켜 줄게.

  

 세 마녀들 - (맥베스가 나타나자)

               맥베스 만세! 왕이 되실 분! 

               (맥베스가 떠나자, 다같이 둥글게 손잡고 돌며) 

               우리 떠도는 자매들은 분위기를 조장하고 풍파를 일으킬 줄 알지.

               우리가 둥글게 손잡으면 땅과 바다도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지.”


베르디는 소름 돋는 선견지명을 발휘하여, 

셰익스피어가 원작에서 세 명의 마녀로 설정한 것을 세 마녀들 집단으로 바꾸고, 

이를 합창단이 노래하도록 했다. 


뇌에 주름이 조금이라도 잡힌 사람이라면, 

비겁한 언론집단과 비열한 정치집단(검·경, 국정원까지도), 그리고 악덕 재벌집단이 

각각 세 마녀로 분장한 것이라는 걸 곧 눈치 챌 수 있으리라. 


그들은 노래 속 고백처럼 정말 ‘떠도는’ 자매들이다. 

일제 강점기에는 천황에게 혈서로 충성하고, 

북한군이 들어오면 김일성 장군 만세를 외치고, 

쿠데타가 나면 박정희 장군 만세, 전두환 장군 만세를 외친다. 

심지어 민주화가 되면 마치 자신들이 민주투사였던 양 소리친다. 

비겁하게 살면 이 땅에선 대대손손 잘 먹고 잘 산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영악한 떠돌이들이다.



이 오페라는 실화에 근거한 것으로, 

맥베스는 정확히 천 년 전에 스코틀랜드에 실존했던 인물이다. 

마녀들 뿐 아니라 다른 인물들도 오늘날 이 땅으로 데려오면 이야기는 이러하다.


1막. 


마녀들이 섬기는 헤커트(최태민 분)는 

아무 생각이 없는 맥베스(박근혜 분)에게 왕이 되리라고 예언하며 접근한다. 

맥베스는 무언가를 하기 위해서 왕이 되려는 게 아니다. 

그저 왕이 되는 것 자체가 목적이고, 그 권력을 유지하는 것만이 목표이다. 


마녀들과 내통하는 레이디 맥베스(최순실 분)가 맥베스의 뒤에 바싹 붙어 숨어서, 

그에게 살인 계획을 짜주고 악행을 하나하나 지시한다. 

결국 맥베스는 왕 던컨을 죽인다. 

그리곤 “신이여, 저 이름 모를 범인을 꼭 밝혀내어 엄벌하소서!”라고 가증스럽게 외친다.


2막. 


승마라도 할 자식조차 없던 맥베스는 

친구 밴쿠오의 자손이 왕이 되리라는 예언이 불안하여 그를 몰래 죽인다. 

연회에서, 죽은 밴쿠오의 허상을 보고 놀란 맥베스가 얼떨결에 자신이 저지른 범행을 자백하자, 

사람들은 술렁거린다. 

“이게 나라냐! 도적들이 소굴이지!”


3막. 


나라 분위기가 심상치 않자, 

맥베스는 이름 모를 종교 의식을 벌이고 있는 마녀들을 또다시 찾아간다. 

마녀들은 마약을 만들고 있다. 

마녀들이 숭배하는 유령(박정희 분)이 나타나 

“더 잔인해져라, 넌 절대 지지 않는다. 반대세력을 없애라, 민중은 개돼지일 뿐이다.” 

라고 마약에 취한 맥베스를 부추긴다. 

그는 이제 자신을 반대하는 부하 맥더프의 아내와 자식들마저 다 죽인다.



4막. 


민중의 탄식이 합창으로 흐른다.


“이 나라는 자식들의 무덤이 되버렸다.

 매일 유가족의 울부짖는 소리가 하늘을 찌른다. 

 허나 하늘은 무심하고, 사람들은 그저 종이나 계속해서 울려댈 뿐, 

 진정 눈물을 흘릴 용기를 가진 이는 아무도 없구나!”


세월호 범죄의 진상규명을 몇 년째 요구하고 있는 천막을 광화문 거리에서 한번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차마 이 노래를 허투루 들을 수 없으리라. 

그러나 레이디는 혼이 정상이라 이런 민중의 노랫소리 따위엔 결코 흔들리지 않는다. 

잠이 보약인 그녀는 몽유병을 앓지만, 

그 꿈 속에서조차 절대로 후회하거나 반성하지 않고 죽어버린다. 


맥베스는 이 단짝의 죽음에도 전혀 개의치 않는다. 

민심이 완전히 돌아섰다는 보고에도, 

오히려 그는 유령이 ‘더 잔인해지라’고 한 말에 기대어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라는 아리아를 부르며 

끝까지 권력을 놓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명한다.


결국 ‘조국을 미워하지 않는 모든 사람’들이 들고 일어나 맥베스에 맞서 싸우고, 

결국 맥더프의 칼에 그는 죽는다. 

민중은 열렬히 맥더프를 영웅으로 칭송한다. 


하지만 던컨 왕의 아들인 맬컴이 나타나 외친다. 

‘이제 내가 이 나라의 왕이다. 나를 믿어라! 내게 충성하라!’


소름 끼치게도 해커트의 유령은 멀리서 이 모습을 바라보며 씨익 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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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오페라는 마녀들의 합창으로 시작해서 민중의 합창으로 끝난다. 

합창단이 주인공인 셈이다. 

이 주인공은 무대에서 일인다역을 해야 한다. 

좀 전까지 마녀역할을 하던 사람이 권력자의 연회에서 귀족이 되었다가, 

압제자에게 죽은 아들의 어머니가 되고, 

새 권력자를 찬양하는 속없는 민초가 된다. 

무대 위에선 어쩔 수없이 다중인격체인 것이다.


그런데 현실의 모습이 그리 다르지 않게 느껴지는 건 왜일까. 

현실에서도 여태 마녀 노릇을 하던 사람이 돌연 억압받는 민중 노릇을 한다. 

좀 전까지 온갖 거짓으로 권력을 옹호하던 자들이 

갑자기 평생 권력에 맞서온 투사 역을 하고, 

권력에 기생하며 나라를 갉아먹던 자들이 

민중의 피땀으로 이루어낸 시대에 무임승차해서 주인 역을 한다.

그래도 우리는 덤덤할 뿐이다. 


마녀를 숭앙하고 그에 동조하던 사람이 

갑자기 마녀를 타도하자는 사람으로 변신해서 사는 현실세계가 

익숙하고 아무렇지도 않다면, 

혹시 나 자신도, 이미 모르는 사이에 ‘떠도는’ 마녀의 비겁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세종회관 밖 광장엔 매일 분노의 함성이 가득하다. 

나는 그저 노란리본이나 달고 그 아픈 현실을 지나쳐 와 무대에서 덧없는 연습을 하다 돌아간다. 

아마 공연하는 날에도 밖에선 이 무대보다 수십만 배 더 커다란 노랫소리가 날 것이다...


아직도 마녀들이 숭배하는 유령이 우리를 지배하는 이 절망적인 현실에서도, 

결코 비겁하게 떠돌지 않는 그 누군가는 

거스를 수 없는 역사의 흐름을 꿋꿋하게 피눈물로 이어가고 있으리니, 

그에 부끄러움으로 깊이 감사할 따름이다.



구자범